불온한 구분짓기에 날카로운 반격

 무표정 얼굴 물체로 가린 자화상, 외모로 사람 평가하는 세태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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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웅필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연작.

 

- 변웅필 개인전, 아리랑갤러리서

이런 그림도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노톤의 배경에 터럭 없이(심지어 눈썹도 없다) 벌거벗은 한 인물의 초상.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인물은 손으로 입술을 잡아 비뚤어지게 하거나 손가락으로 입술을 늘어뜨리고, 코와 뺨을 심하게 일그러지게 했다. 얼굴에 별다른 동작을 가하지 않은 인물들은 네잎 클로버, 바나나, 크리스마스 방울 등으로 얼굴 중앙을 가리는 통에 온전하게 바라보기가 어렵다. 손가락으로 살과 근육을 비틀어 일그러진 얼굴을 만들고 때론 사물 뒤에 가려진 채, 하나의 인물로 온전히 인식되길 거부하는 자화상. 바로 변웅필 작가가 그리는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연작이다.

'자화상 작가' 변웅필(41)이 아리랑갤러리(부산 해운대구 우동)에서 '한 사람'전을 선보이고 있다. "저를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리니 자화상은 맞아요. 단지 일반적 자화상이 그 사람의 특징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면, 제 작업은 제 모습을 숨긴 자화상입니다. 한 사람으로서의 초상은 저를 모델로 했지만 불특정한 인물이죠."

그의 작업은 독일 유학시절(1997~2006) 현지인과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편견에 시달린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시선에 대항해 외모를 결정짓는 중요한 단서들, 웃음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을 동반한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모두 지웠다. 그것도 모자라 눈썹을 지우고 얼굴을 일그러뜨리거나 뭔가로 가려 누구인지 알기 어렵게 만듦으로써 차별하고자 하는 이들의 뒤통수를 쳤다. 전시장에 내걸린 가수 장윤정의 초상화도 눈썹이 모두 지워져 있어 언뜻 알아챌 수 없다. 결국 작가는 '사람은 모두 같다,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말을 그만의 화법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통념을 뒤엎는 개념 자화상을 선보인 독일에서의 전시(2004, 2005년)는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의 그림에서는 여느 오일 작업에서 보이는 얼룩을 발견할 수 없다. 이는 가로 방향으로만 짧고 규칙적으로 붓터치를 하면서 인물의 모습을 완성해 나가기 때문이다. 작가는 "저에게는 그림을 '그린다'보다 '만든다'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수백 장의 사진을 찍어 컴퓨터로 프린터를 한 뒤 이미지를 조정하고 빔으로 형태를 쏴서 그림을 그리죠. 붓 터치도 덧칠 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순차적으로 이어 붙여 내려가며 의도적으로 얼굴의 형태를 만들어요. 기존 회화의 답습이 아닌 새로운 화법을 구축해 가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화의 모태가 된 독일 유학시절의 드로잉 연작과, 드로잉과 설치의 융합을 꾀하기 위해 합판을 이용해 만든 인물 드로잉 설치 작업도 소개하고 있다. 다음 달 2일까지. (051)731-0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