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인간'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진 작가 성유진(31).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이른 나이에 부산을 떠났다. 다섯 살 때 강원도 속초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지금 사는 곳도 서울이다. 그래서일까. 부산이 그리워 2006년 이후 지금까지 거의 1~2년 주기로 고향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아리랑 갤러리에서 지난 2009년에 이어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크레용의 일종인 콘테로 그린 '고양이 인간' 시리즈(20여 점)와 작가 스스로 '부드러운 조각'이라 하는 천으로 만든 인형(6점)이다.

 

그의 그림은 수많은 '긋기'에서 시작된다. 콘테로 작업을 하는 그는 털이 있는 '고양이 인간'을 그리기 위해 다른 화가들보다 더 많은 선을 긋는다. 작가는 털이 있는 '고양이 인간'이란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캔버스 대신 씨줄과 날줄이 조밀한 이중 천을 사용해 수십 번의 '긋기'를 시도한다. "마냥 긋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콘테에 물감을 섞어 손으로 문질러 표현하기도 하죠. 지문이 닳을 때도 있어요." 그러면서 재빨리 손을 감춘다.

 

이번에 선보이는 '고양이 인간' 연작은 그동안 그려온 칙칙한 분위기에서 한 발 비켜나 있다.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인간 모습을 한 고양이이거나 왠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면, 이번에는 명상을 하거나 세상을 엿보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도 등장한다.

세상을 엿보거나 동경하지만, 그렇다고 이 '고양이 인간'은 세상 밖으로 선뜻 뛰어나가지는 못하지 싶다. 눈을 보면,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해 막연히 두려움을 느끼고 불안감을 느끼는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과도 닮았다.

작가는 수년 전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더랬다. "집에선 말수도 거의 없을 정도였죠." 집에서 우연히 기르게 된 고양이 '샴비'가 그의 말벗이 되어주는 바람에 병도 나았다고. 이 때문에 인체를 묘사하는 데 주력했던 그의 그림 속에, 고양이의 형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술은 자기 치유의 길을 걷는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에게 있어 회화는 바로 그 길의 꽃이며 신발이고 기쁨인지 모른다. 갤러리 한편엔 어린 시절 트라우마도 슬쩍 끄집어냈다. 치유를 위해서다.

▶성유진 최근작=10월 16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우동 아리랑 갤러리. 051-731-0373. 정달식 기자 dos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