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진 녹색으로 해석한 파국적 현실

이샛별 작가 9번째 개인전, 장면 중첩해 전체 이미지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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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샛별 '녹색기반'

 

전시 제목이 '녹색 파국'이다. 회색빛 문명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녹색은 '자연'이다. 녹색 자연에는 쉼이 있고, 생명이 있다. 이토록 신비한 '녹색'이 '파국'이란 단어와 어울릴 수 있는가. 이를 두고 작가는 "자연에 대한 관념적 생각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작가는 다시 "서구 사회는 전통적으로 녹색을 불길한 것으로 봤다. 그 파괴적인 힘에 무력했으며 그 분노를 예측할 수 없었다. 영화 속 에일리언이나 괴수의 피부색이나 피 색깔도 녹색이다. 오늘날 녹색이 인간에게 쾌적한 느낌을 준다면 그것이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이 아니라 문명 속에 포섭된 자연, 곧 문명화한 자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녹색 파국'은 파국적인 시대가 앓고 있는 종말의 증상에 붙인 이름이다.

작가 이샛별이 녹색이 가진 통념에 딴죽을 걸었다. 아리랑갤러리(부산 해운대구 우동)에서 9번째 개인전을 여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싱그러운 녹색의 대척점에 있는 얼룩진 녹색을 들고 왔다. 작가는 낯선 이미지의 녹색을 던져 놓는다. '녹색 파국' 속의 녹색은 결코 투명할 수 없다. 작가는 다양한 푸른색 계열의 색을 덧입히는 동시에 여러 색의 물감을 떨어뜨려 이데올로기적으로 오염된 색채를 재현한다. 가볍고 쾌적한 활동의 배경이 되어야 할 녹색이 무거운 기운으로 화면을 압도한다. 작품 속에는 불길한 매혹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어느 한 작품도 하나의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작가는 녹색을 그 내부로부터 분열시키는('이중화') 방식으로 몽타주를 선택했다. 여러 장면을 중첩하며 이 장면들이 서로 충돌해 작품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다. 폐공장에서 춤과 폭력이 동시에 분출되는가 하면('거의'라는 세계), 눈부신 창밖 너머에서 토끼 가면이 쏟아지는 살덩어리들을 바라보고 있고, 화면 중심에는 눈에 흐드러진 꽃이 핀 인물이 넘쳐흐르는 빛 속에서 아이를 목욕시키고 있다('숨겨진 조건'). 전자가 춤과 폭력 사이의 무한판단을 요구한다면, 후자는 파국 앞에 선 작가의 간절한 소망을 내포한다. 작가는 녹색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 우리가 겪고 있는 파국적 현실을 꼼꼼히 관찰하고 있다. 다음 달 15일까지. (051)731-0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