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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중고등 학생이 그린 것처럼 대충대충 색을 칠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속엔 강한 색채감이 살아있다. 방정아(44) 작가의 그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게 작가 특유의 필법이다. 여기에 더해 화폭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슬쩍슬쩍 불교 느낌을 드러낸다. 인물의 움직임이나 손의 모양이 부처의 수행 자세나 손동작(수인·手印)과 닮았기 때문이다,

방 작가가 이런 작품을 모아 아리랑 갤러리에서 '헐'이라는 이름으로 전시 중이다. 작가는 제목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했다. "'헐'은 흔히 황당할 때 쓰이는 말이지만, 불교에서 위엄 있게 꾸짖는 소리로 사용되는 '할'의 의미도 있다." 왜 그림에서 불교적 색채가 드러나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

 

작가는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거나 우리 삶 곳곳에 깊숙이 들어가 지질하고 고단하면서도 끈끈한 소시민의 삶을 위트 있게 표현하는 탁월한 재주를 지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다만, 지금까지는 다소 직설적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엔 불교적인 색채를 드러내며 좀 더 은유적으로 바라본다고나 할까?

강이 펼쳐진 곳에서 한 여인이 머리를 감고 있는 듯한 그림이 있다. 이 강은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등장하는 강 중 하나. 강 속을 자세히 살피면 이상한 괴물체도 보인다.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은 여인의 손은 부처의 수인이다. 작가는 "보살의 마음으로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비판하며 지친 물을 달래는 것"이라 했다. 자연을 거스르는 사업, 작가의 입에서는 아마도 '할'을 소리 높여 외치고 싶었을 터이다.

 

붉은 바닥에 회색 천장, 낡고 긴 창, 벽면에 따라 놓인 헬스기구들, 역기를 들려고 허리를 숙인 남자의 벗은 등과 짧은 바지, 분홍색 실내운동화, 이두박근을 단련하는 기구를 당기는 당당한 체구의 남자, 허벅지 근육을 올리는 기구에 반쯤 드러난 허벅지, 알 수 없는 별도 공간 안에서 줄을 당기는 남자. 운동하는 이런 사람들 사이에 어정쩡하게 선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검은 모자에 검은 옷을 입고, 하이힐을 신고, 겨드랑이엔 핸드백을 바짝 당겨 붙인 채 말이다. 느닷없는 장면이다. 이 느닷없는 순간, 어색함이 보여주는 그런 것이 요즘 말하는 '헐'이다. 현실을 읽는 방정아의 태도다.

 

'삼보살'이라는 제목의 작품도 비슷하다. 얼굴 없는 보살의 손엔 각기 닭, 돼지, 소의 머리가 쥐어져 있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을 기꺼이 몸보시한 소, 돼지, 닭을 위로하기 위해 보살로 표현했단다. 작가의 동물에 대한 '측은지심'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표현의 과격함도 느껴지는 그림이다, 이쯤 되면 '헐'을 해야 할 지, 아니면 '할'을 외쳐야 할지? 애매해진다.

현실 같으면서도 현실 같지 않은 그림들이다. 방정아는 그랬다. 예술가의 예민한 더듬이로 시대의 아픔이나 일상의 순간을 유머와 위트로 포착해 냈다. 이번엔 그동안 보여온 리얼리즘에 깊이감까지 더했다고 할까? ▶방정아 '헐'=30일까지 해운대구 우동 아리랑 갤러리. 051-731-0373. 정달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