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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보다 더 무서운 존재들이 득실거리는 정글 같은 잔인한 이 세상을 건너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정면에서 폭력에 저항하거나, 폭력에 호응하거나, 아니면 침묵하거나.

볼펜화가 김성룡의 작품은 직접적인 현실발언 쪽이었다. 인간이 역사에 저지른 폭력을 고발해왔던 그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 아리랑갤러리에서 9월 18일까지 열리고 있는 '김성룡 개인전-검은 회오리의 숲'에서 그 단초가 보였다.

그는 주로 볼펜으로 그림을 그린다. 연필은 지우거나 물감은 덧칠할 수 있지만 그가 주로 사용하는 볼펜은 자칫 잘못 선을 그어도 지울 수가 없다. 그냥 찢어버리는 수밖에. "핏줄처럼 그어진 볼펜의 선을 통해 몸 속의 기가 빠져나가는 경험을 했다"고 할 정도로 지독하게 선을 그었다. "수만 번은 그어야 그림이 그려지지만 뼈를 심는 것처럼 단단하게 내면을 더 깊이 파고드는 재미가 있어 볼펜을 놓을 수가 없다"고 했다.

강렬한 에너지에서 분출하는 그런 지독함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림은 부드러워졌다. '저녁연주'라는 작품에서 나무에 누워있는 맹수의 눈빛이 많이 누그러졌다. 기왕의 작품에서 봐왔던 반항적이고 히스테릭한 눈동자가 아니다. 호랑이 등에 앉아서 바이올린 선율을 들려주는 아이 때문일까? 호랑이는 역사의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존재일지 모른다. 김성룡은 스스로 음악의 선율로 심연의 상처를 다독이고 있는 거다.

"동물은 인간에게 밀려난 약자라는 생각을 해요. 그 상처를 불러내 어루만지는 제사의식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적대하지 않고 공생하는 영역을 찾고 싶기도 했어요."

교복입은 소녀가 사슴을 안고 있는 그림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데 소녀의 이마에 분홍글씨처럼 'DMZ'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요즘 관심이 있는 게 DMZ에요. 환영처럼 우리에겐 분단 이데올로기가 박혀 있지요. 그림이 기괴해 보이지만 현실이 더 병리학적이고 초현실적이지요." 맞다. 현실은 소설이나 그림보다 더 무시무시한 정글이기 때문이다. 051-731-0373. 이상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