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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나 소나무, 대나무, 산(山)은 산수화의 단골 소재다. 한국적인 멋을 듬뿍 담은 산수화. 하지만 그 산수화가 우리가 흔히 보는 액자 속에만 있는 건 아니다. 전시장 벽이 화선지가 되고 여백이 되었다면….

매화꽃은 금세라도 떨어질 듯하고 바람에 휘어질 것만 같은 대나무 그림에서는 산들바람이 느껴진다. 연속적인 선의 조합은 마치 붓의 힘찬 터치처럼 강렬한 산수화를 만들어 냈다. 동양화의 생동감과 진중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락없는 수묵화다.

하지만 이게 강철로 만들어져 있다면. 강철판을 잘라 매화 가지를 만들고 꽃을 만들어 붙였다. 용접을 하니 용접 자국이 남고 그것은 나뭇가지 사이, 꽃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아리랑 갤러리가 마련한 조환(53) 개인전은 한국화와 조각의 만남을 통해 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전시 작품은 철로 된 설치 작품과 수묵화 20여 점. 모두 최근 1~2년 사이에 만든 작품이다.

 

작가는 붓과 종이 대신 용접기와 철판을 들고 매화와 국화는 물론이고, 소나무, 대나무, 산을 그림 밖으로 불러냈다. 마치 종이 위에 먹을 치듯 그렇게 강철판을 절단하고 붙였다. 5~20㎝의 크기로 울퉁불퉁 잘라낸 철판을 용접해 형상화한 대나무와 산은 서예의 필획을 연상시킨다. 비록 날렵한 맛은 붓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대신 수묵화의 진중함이 강하게 전달된다.

 

전시장의 흰 벽은 동양화의 여백 같은 느낌은 준다. 그리고 흰 벽면에 내려앉은 은은한 그림자. 마치 화선지에 먹이 번진 듯 깊은 여운을 더한다. 대는 대숲이 되고, 댓잎은 이리저리 흔들린다. 매화는 더 많은 꽃을 달고, 모란은 더 풍부해졌다. 때로는 물과 소금을 뿌려 녹을 슬게 해 산화철의 느낌을 주는 것도 있지만 철판은 대부분 전통 수묵화처럼 검은 색으로 착색돼 있다.

미술평론가 강선학은 "조환의 작품은 사진이나 인쇄물로 봤을 때와 너무 다르다, 거칠게 말하면, 인쇄물은 그의 작품을 담을 수 없다. 조명으로 중첩된 선과 음영, 거칠면서도 정교함, 직접 보지 않으면 결코 만날 수 없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작가 조환은 1980년대 중반 좋은 필력을 지닌 작가로 미술계에서 한창 주목을 받을 때, 홀연히 미국 뉴욕으로 가서 서양 조소를 전공한다. 서예처럼 밑그림 없이 머리에 스치는 이미지대로 철판을 잘라내고 이어 붙여 산수나 대나무 등을 형상화했다. 관념이니 정신에 치우치는 전통 한국화의 틀에서 벗어나 그는 물질에 주목하며 재료와 기법의 확장을 시도했다.

소위 철을 전기절단기로 자르고 용접해 조각 같은 산수화를 펼쳐 보인 것. 그게 바로 강철로 빚어낸 수묵화다. 이번 전시에서 한국 특유의 미감과 여백이 드러나는 조각을 만나 볼 수 있다.

▶조환 전=7월 10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우동 아리랑 갤러리. 051-731-0373. 정달식 기자